대법원이 2023년 9월 21일 성폭력 범죄 2018도13877 사건에 관한 중요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렸는데요. 바로 '강제추행죄'에서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를 재정의한 판결이에요.
사건의 개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이 사건은 피고인이 4촌 친족관계인 피해자(당시 15세 여성)를 자신의 집에서 강제로 추행한 사건이에요. 피해자는 학교 과제를 도와달라며 피고인의 집을 찾아갔어요. 그런데 피고인은 갑자기 "내 것 좀 만져줄 수 있느냐?"라며 피해자의 손을 잡아 자신의 성기 쪽으로 끌어당겼어요. 피해자가 이를 거부하자 이번에는 "한 번만 안아줄 수 있느냐?"라고 말하며 피해자를 양팔로 끌어안고 침대에 쓰러뜨린 후 피해자 위에 올라타 반항하지 못하게 했어요.
그리고 "가슴을 만져도 되느냐?"라고 말하면서 피해자의 상의 티셔츠 속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만졌고, 피해자를 끌어안는 등의 추행 행위를 했어요. 피해자가 "이러면 안 된다. 이러면 큰일 난다"라고 말하며 방문을 나가려고 하자, 피고인은 피해자를 뒤따라가 다시 끌어안았다고 해요.
법원의 판단 과정: 유죄? 무죄?
이 사건의 재판 과정도 꽤 흥미로워요.
1심 법원(제2함대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고, 피고인의 행위가 강제추행에 해당한다고 보아 징역 3년을 선고했어요.
그런데 2심 법원(고등군사법원)은 피고인의 행위가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어요. 대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위계등추행)은 유죄로 인정했고요.
이에 검사와 피고인 모두 상고했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23년 9월 21일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이송하는 판결을 내렸어요.
종래의 판례 법리: 그동안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나요?
이 사건의 핵심은 '강제추행죄'에서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있어요. 그동안 대법원은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판단해 왔는데요:
- 기습추행형: 폭행행위 자체가 곧바로 추행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이상 그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고 했어요.
- 폭행·협박 선행형: 폭행 또는 협박이 추행보다 시간적으로 앞서 그 수단으로 행해진 경우에는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하는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요구된다고 했어요.
쉽게 말하면, 갑자기 기습적으로 추행하는 경우에는 가벼운 유형력 행사도 폭행으로 인정했지만, 먼저 폭행이나 협박을 한 뒤 추행한 경우에는 피해자가 저항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 범죄가 성립한다고 봤던 거예요.
변경된 판례 법리: 무엇이 달라졌나요?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대법원은 위 판례 법리 중 두 번째 유형(폭행·협박 선행형)에 관한 해석을 명시적으로 변경했어요.
대법원은 폭행·협박 선행형의 강제추행죄에서도 '폭행 또는 협박'이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로 강력할 것이 요구되지 아니하고, 상대방의 신체에 대하여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폭행)하거나 일반적으로 보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협박)하는 것"이라고 재정의했어요.
즉, 강제추행죄가 성립하기 위해 피해자가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피해자의 신체에 대한 불법적인 유형력 행사나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 고지가 있으면 충분하다고 본 것이에요.
판례 변경의 이유: 왜 바꾸게 되었나요?
대법원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판례를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요? 판결문에 나타난 주요 이유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아요:
- 법문언상 근거 없음: 형법 제298조 및 성폭력처벌법 제5조 제2항 등 강제추행죄에 관한 현행 규정은 폭행·협박의 정도를 명시적으로 한정하고 있지 않아요.
- 보호법익과의 부합성: 강제추행죄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하는데, 종래의 판례 법리는 이러한 보호법익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봤어요.
- 법적 일관성: 폭행죄와 협박죄에서의 '폭행'과 '협박'과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혼란을 초래했다고 판단했어요.
- 사회적 인식 변화: 성폭력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판례 법리, 재판 실무의 변화를 반영할 필요가 있었어요.
- 2차 피해 방지: 종래의 판례 법리에 따르면 피해자에게 적극적인 저항을 요구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고, 이는 2차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어요.
특히 재미있는 점은, 실제 재판 실무에서는 이미 형법상 폭행죄나 협박죄에서 정한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으면 강제추행죄 성립을 검토하는 방향으로 운영되어 왔다고 해요. 이번 판결은 이러한 실무와 종래 판례 법리 사이의 괴리를 해소한 측면도 있어요.
별개의견: 모두가 찬성한 건 아니에요
전원합의체 판결에는 다수의견 외에도 별개의견과 보충의견이 있었어요. 대법관 이동원은 별개의견을 통해 종래의 판례 법리가 여전히 타당하므로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별개의견의 핵심 논거는 다음과 같아요:
- 종래의 판례 법리는 강제추행 중 '강제' 부분에 관한 법문언과 항거 곤란을 기초로 마련된 성범죄 관련 특별법과의 관계에 부합함
- 종래의 판례 법리는 피해자의 현실적 저항을 요구하거나 2차 피해를 야기하는 법리가 아님
- 수십 년 동안 반복적으로 선언된 확고한 판례 법리를 변경할 명확한 근거가 부족함
- 처벌 범위 확대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후 국회의 입법절차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함
다만, 별개의견도 이 사건에서는 종래의 판례 법리를 적용하더라도 피고인의 행위가 강제추행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해야 한다는 다수의견의 결론에는 동의했어요.
이 판결의 의의와 영향: 무엇이 달라질까요?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강제추행죄의 성립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법리를 변경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어요. 특히 다음과 같은 영향과 의의가 있을 것으로 보여요:
- 피해자 중심적 접근: 성폭력 범죄에서 피해자의 경험과 관점을 더 중요하게 고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줘요.
-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 강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법리 해석의 전환점이 될 수 있어요.
- 수사 및 재판 실무 영향: 강제추행 사건의 수사와 재판에서 폭행·협박의 정도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달라지므로, 기소 여부와 유무죄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 성인지 감수성 반영: 최근 대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하는 판결들을 내리고 있는데, 이번 판결도 그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마치며,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강제추행죄에서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를 재정의함으로써, 종래 법원이 취해온 접근 방식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어요. 변경된 판례 법리는 성범죄의 특성과 보호법익, 사회적 인식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여요.
물론 이런 판례 변경에 대해서는 별개의견에서도 지적했듯이, 입법부가 아닌 사법부가 법해석을 통해 범죄의 성립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쟁도 있을 수 있어요. 또한 판례 변경으로 인해 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확장될 우려도 제기되고 있어요.
하지만 강제추행죄의 보호법익인 성적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고, 성폭력 피해자들의 어려움을 경감시키는 방향으로 법리가 발전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이 판결이 실제 수사와 재판 실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성폭력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법적 대응이 어떻게 변화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이 판결을 계기로 성범죄에 대한 더 많은 사회적 논의와 인식 개선이 이루어지길 바라요.